최종편집 : 2024.05.17 15:40
Today : 2024.05.17 (금)
도적놈, 혁명, 북미 핵협상
도둑질 잘하는 도적놈에게 고용되어 망을 잘 보아주어서 그 도둑질한 노획물 중 소량을 얻어먹고 사는 것, 농사짓는 농부에게 고용되어 농사를 지어주고 그 수확물 중 소량을 얻어먹고 사는 것, 그 중 어떠한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어떤 일을 해서든지 먹고 산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질문 자체가 무가치 하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무슨 일을 하던 그건 아무 의미가 없고 힘 안들이고 더 기름지고 풍요롭게 살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라고 답할 것인가?
동학혁명군이 기치를 들었던 것은 자주와 평등이었다.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의 일은 우리가 결정하며 살아가자. 사람이 곧 하늘이다. 고로 모든 사람은 하늘아래 평등하다. 탐관오리와 외세를 척결하고 수탈에 지친 백성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자!’ 이런 구호를 내세우고 싸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반한 관군과 일본군은 어떤 구호를 외쳤던 것일까? ‘황제폐하의 나라에서 황제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 세계는 천황폐하의 것이다. 천황폐하를 위하여 그에 반대하는 모든 족속을 죽여 바치자. 나의 삶의 존재 가치는 황제와 천황폐하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에 반대하는 자는 모두 역적이다. 모조리 죽이자!’ 바로 이런 구호로 무장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최신식 기관총과 우수한 화포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에게 우금치에서 그 수가 월등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동학혁명군은 몰살당했다. 자주와 평등의 기치를 들었던 절대 다수에게 1인인 천황과 황제가 승리한 것이다.
역사란 참으로 간단한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순수한 이상에 상관없이 물리적 무장력과 지략이 우수한 쪽이 승리해 버린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다.
어떠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리하여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 라고 묻는다면 도적놈에게 협력하여 먹고 사는 사람과 농부에게 협력하여 먹고 사는 사람의 대답은 현격하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도적놈에게 협력한 사람이 손쉽게 더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 농부에게 협력한 사람은 고된 노동으로 몸이 상하고, 자연재해와 싸워야 한데다가 고작 거친 밥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십중팔구가 그렇다. 여러분이라면 어떠한 삶을 택하겠는가?
마찬가지로 그때 당시 동학혁명군이 가졌던 새로운 이상을 함께한 동학교도와 농민들은 일본군의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 해월 최시형, 그리고 녹두 전봉준은 동료에게 배신을 당해 관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해 죽었다. 그들이 성공했다면 어떤 세상이 열렸을까?
그들 말대로라면 부조리 없는 세상에서 서로 함께 협력해 살아가면서,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해 살아가는 공존공영의 평등 세상이 열렸을 것이다. 그러한 삶은 과연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이며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일까?
그렇다면 황제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전쟁에 참여한 자들은 과연 어떠한 자들일까? 황제와 천황을 숭배하며 그들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 숭배의 대가로 부여된 지위와 권력과 기름진 밥을 누리면서 고된 노동으로부터 저 수탈 대상인 백성이라는 자들의 삶과는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처자식을 위하여,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었다.’라는 여러 구차한 이유들도 붙었다. 왜 그런 구차한 이유들이 붙는 것일까? 그런 삶이 인간으로서 과연 가치 있는 삶일까?
물론 작금의 시대야 돈과 섹스와 권력을 향한 난투극의 시대인 고로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을 따져 묻는 다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일 게고 또 구시대적 발상의 혁명은 이미 물 건너 간 시대가 되어버렸다.
과거 절대 왕정이 가진 무장력이라 해보아야 기병이나 포 그리고 화살 정도가 전부인 상황에서 농민이나 노동 대중이 그 부조리를 각성하고 무장하면 왕정을 능히 전복시키고 혁명을 완수할 수도 있는 무장력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무기가 발달해 있다. 1개 사단 정도의 무장력이면 한 도시쯤은 손쉽게 초토화 시킬 수 있으리라 싶다. 감히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손인 존재들로서는 도무지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개개인을 의식화 시켜 부당한 권력에게 대항하게 만들었던 구시대적 혁명 전략은 이제 무효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핵무기라는 엄청난 무기를 손에 쥐고 전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지루하고 지난한 저 노예근성에 푹 절은 무지하고 무식한 그리고 가련한 개개인의 의식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을 지경이 오래전 되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촛불혁명은 이러한 현시대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최대치로 가능 할 수 있는 기적적인 혁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100만 명이 한 곳에 모여 ‘부정한 정권은 퇴진 하라!’고 연일 외쳤고 결국 퇴진 시켰으니 가히 혁명이라 할만하다. 거기에 대고 군대와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하고 유혈 사태가 났더라면, 그리고 그 진압이 용케 성공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물론 일시적인 진압은 성공했을지라도 끝없는 민중들의 저항 속에서 시간이 좀 오래 지나더라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두환이 증명한 것이겠다 싶다.
그러나 성공한 촛불혁명의 대가로 자리를 차지한 현 정부는 지금 과연 그 촛불혁명의 염원을 잘 실현시키고 있는 것인가?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지금 의아해 하고 있는 것 같다. 해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촛불혁명이 원했던 그대로를 촛불 외의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사정없이 실현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하는 자들의 반발이 있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현정국의 해법이고 오래 살아남는 길이리라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들도 누구처럼 크게 실패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바라건 데 다만 이 예감이 틀리기만 바랄 뿐이다.
막상 알고 보면 삶도 간단하고 정치도 실상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간단한 것을 쉽게 하지 못한다. 왜 일까?
정권이 도덕성이 없으면 그 정권에 빌붙어 사는 자들 군대나 경찰이나 공무원 등 전부가 도덕성 없는 나쁜 놈이 되고 만다(수많은 아이들을 죽인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를 생각해보자). 독점 재벌 안에서 밥을 먹고 사는 자들은 결국 그 독점 재벌의 부당한 독점에 종사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도적놈에게 고용되어 망을 보아주고 그 값으로 밥을 얻어먹고 사는 삶, 그 삶이 비록 기름지고 윤택할지라도 그러하기에 뜻 깊은 선비는 비록 굶주려 죽을지라도 그 짓을 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저 노예 같은 자들 말고, 비록 지극히 소수일지라도 사람이라는 자들은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세상살이의 전부가 그와 마찬가지다.
다만 물리력을 장악하고 밥을 주고 지위와 권력을 나눠주고 힘을 행사할 때는 도적놈이 도적놈으로 보이지 않고 상전으로 보이는 기가 막힌 현상이 이 인간 세상에는 다반사로 일어났고 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적놈이 실상은 희대의 히틀러 같은 전쟁광에 흉악한 살인마라도 당시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마치 저 지배자 황제나 천황폐하나 독재자가 대단히 위대해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작금의 북미 문제도 마찬가지다. 힘이 월등히 차이가 나는 존재들에게는 절대로 협상이라는 말이 존재 할 수가 없다. 호랑이와 토끼가 서로 협상한다면 개도 웃을 일이다. 북미의 핵협상 그것은 북과 미가 힘의 차이가 별반 없다는 것의 증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 따지고 보면 저 작고 작은 북이 핵의 힘이 더 막강하기에 세계에서 최고로 막강하다는 미가 감히 협상하려 덤비는 지도 모를 일이지 않겠는가?
미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나 리비아하고는 절대로 협상하려 하지 않았다. 바로 최첨단 무기를 들고 쳐들어갔다. 그런데 왜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북에게 협상하려 하는 것일까? 아무튼 북이 가졌다는 ICBM, SLBM이 미에게 위협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리라 싶다.
보아하니 결국 서로의 치열한 협상의 기술만 남은 것 같은데? 의문이다. 그것 또한 저 순종 노예들에게 보이기 위한 눈속임 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인지? 그것을 알아보는 자는 소수일 것이다.알아보아도 그것을 이용해 속여야만 하는 자들과 속임을 당하고도 입을 꾹 닫아야 하는 자들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래도 이렇게 답하는 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도적놈이든 농부든 아니 설혹 흉악한 살인마라도 따지지 않는다. 내게 큰 떡을 쥐어주는 자가 최고다.’ 거기서 인간의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고, 이 시대의 비극도 실상은 거기에 있고, 그 철지나버린 혁명이란 것도 거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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